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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드라마

[나인] 아홉번의 시간 여행 그 후

eJungHyun 2013. 7. 1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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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정보
tvN | 월, 화 23시 00분 | 2013-03-11 ~ 2013-05-14
출연
이진욱, 조윤희, 박형식, 전노민, 서우진
소개
박선우가 2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신비의 향 9개를 얻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타임슬립 드라마.
글쓴이 평점  



별 생각 없이 추천으로 보기 시작한 [나인]이라는 드라마.

잠깐씩 나오는 타이틀 장면까지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 세심함이 엿보였다.

보는 내내 많은 추리와 상상력을 동원해 봤지만, 항상 나의 예상을 빗나가며 조롱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박선우의 저 눈빛. 회를 거듭 할 수록 깊은 고독을 품는 듯한 저 눈빛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첫 회부터 심상치 않게 가슴을 덜컥 내려 앉게 한 장면.. 히말라야 하얀 눈 밭에서 향을 손에 꼭 쥐고 죽음을 맞이한 남자.

저 향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인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나로서는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안절부절 하게 만들었던 장면이다.


물론 제목이나 얼핏 들은 이야기로, 저 향이 바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열쇠겠지.. 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그 과정과 이야기 전개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으니.




선우가 향에 불을 붙이는 저 순간에.

저 향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휴식을 취하려던 그 순간에.

알 수 없는 찌릿한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럼.. 저게 첫번 째 향인건가. 아홉개의 향 중에서.. 

후후. 회를 거듭해 보면서 종종 이 장면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작가가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을 연신 했었드랬지.



이 드라마의 묘미는. 모든 연기자들의 뛰어난 내면 연기다.

자연스럽에 상황을 표현하고, 눈빛과 몸짓 그리고 말투까지. 스토리에 너무 집중했기 때문인지, 정말 배우들이 너무나 잘해낸 것인지.

1992년의 과거 인물들과 2012년 현재의 인물들의 싱크가 너무 잘 맞아 떨어져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특히나 18살 어린 선우와 38살 어른이 된 선우. 

솔직히 행동이나 표정 같은 것들은 감독이, 작가가, 옆에서 수도 없이 지적하고 요구해서 싱크로율이 높은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중 캐릭터의 이미지 표현이다. 

선우의 20년 전 모습이 정말 저 아이와 같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줘서 드라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소소하게 주민영과 박선우의 러부러부 장면들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기도 하고.



박정우(전노민)의 숨을 내어 놓는 것과 같은 연기에 깊은 고독을 느끼기도 했다.




선우와 정우. 두 형제만이 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 었는 것이. 바로 주민영. 한영훈. 최진철. 오철민. 이 네 사람 덕분이다.

이 네사람이 변하는 매 생애 마다 보여 주는 멋진 표현력. 

이 드라마는. 정말 주인공이 누구라고 말할 수 없는 드라마구나.. 혀를 내 두를 수 밖에.





과거는 언제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바로 원인과 결과다.

과거의 의지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당연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그 시점보다 꼭 20년이 지나야만 현재의 내가 과거 그 시간에 대해 알게 된다는 설정 때문이다.

그게 바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 매 분, 초가 동시에 흐르는 것과 같은 신비한 느낌을 준다.


현재의 선우가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 영향을 주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받은 특정 일에 대해서만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지만 맑은 물에 떨어뜨린 잉크처럼 점차 퍼져서 자연스럽게 물들어 변한 현재의 선우와 주변 모습들이 소름끼치게 무섭다.


아무 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지내다가도, 꼭 20년이 지난 그 순간이 되면

갑자기 머릿속에 "펑"하고 기억이 떠오른다.

신비하고 어름장 같이 날카로운 음악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문득문득 옛날 생각들이 나곤 하는데.

갑자기 전혀 개의치 않았던 옛기억들이 떠오르면.. 

선우처럼 마치 누군가가 과거로 돌아가 내 삶의 꼭지를 틀어 버린게 아닐까. 

그래서 꼭 10년이든 20년이든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뇌 속 깊은 해마에서 기억을 만들어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향을 매번 피울 때 마다 30분이 지나면 안전하게 현실로 돌아오던 선우가.

결국 2012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마지막 향이 모두 타고 나자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2012년 선우만을 과거에 남겨두고.


왜 사라졌을까.

왜 다 사라져 버린걸까.

선우 외에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 남아있는데.


고민고민 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아예 애초부터 저 아홉개의 향이 없었으리라..


2012년의 선우가 1992년 어린 선우에게 가서 준 많은 영향들이

결과적으로 "먼 미래의 선우가 향을 구할 일 조차 없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2012년의 선우가 1992년에 죽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끝 즈음에 나오는 2011년의 선우는. 

1992년으로 가서 죽어버린 2012년의 선우 보다는 과거의 선우인데 

그 선우는 앞으로 아홉개의 향을 구하지 않을 것이니까.. 

시간 여행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결국 죽지도 않겠지.



맨 마지막 58세의 선우가 정우를 구하러 오는 장면을 보면..

정우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향을 찾아 산에 올랐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되풀이 되는 삶인 듯 하다.

선우는 이미 어릴 때, 향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왔던 큰 선우의 미래를 알기에.. 1992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향도 더 이상 없고..)

선우가 안타깝고 돌이키고 싶은 과거는 정우의 죽음 만이 남았다.

그래서 형이 죽고 난 후 얻게 된 1개의 향을 가지고 20년을 기다려서, 형을 구하러 2012년 네팔로 간다.


"형 오랜만이야.." 라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나인 시즌2는 없을 것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런 결론을 내리면서도 여전히 의문인 것은.

2011년의 선우와 모든 주변 인물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2012년은 어떻게 흘러 가고 있을까?

선우의 죽음을 알게된 민영과 영훈, 그리고 정우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11년과 2012년은 공존하는 걸까.

그렇다면 2014년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내가 사는 것이 2014년의 나에게 영향을 주는 건 맞는걸까.

2014년의 내가 이미 살아 버린 2013년 지금의 내 삶은.. 이미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삶인 것이 아닐까.




보면서 중간 중간 나비효과가 생각이 나서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비효과 보다는 조금은 해피엔딩으로 끝맺으려 했다는 점이다.

열린 결말로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주었으니까.


배우들의 연기력. 연출. 편집. 음향. 스토리. 모든 것들이 감탄을 자아내는 드라마 인데다

마지막까지 생각할 꺼리를 주다니.

간만에 깊은 명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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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꼽은 드라마 속 명언들..


"나라면 끝까지 해보겠어. 모두가 행복해질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네 인생이니까 네 맘대로 해도 되지만, 내 인생에도 니가 들어 있단 말이다."

"이 향이 끝까지 나를 조롱한다."

"내가 향이었어.."

"다행이다. 엄마가 곰인형을 안챙겨서.."

"되풀이된 생에도 변함없이 내 옆을 지켜준 사람들.. 그 운명을 선택해준 사람들에게.. 매번 매 생애마다 한결 같이 내 가장 진실한 친구가 되어준 너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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